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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9. 19. 14:24 etc/문학 지식

1. 옥과 볏섬. 

 “고놈들 냄새만 푹푹 나는 것이……, 더러워요.”

 하고 이래저래 핑곌 대며 서울로 돌아가자 하면 아부지는 뜸부터 들이신다. 또 바짓가랑일 부여잡고 아들 숨 막혀 죽는 꼴 보고 싶거든 이래 살지요 하면, “아니, 이게 제 아비한테 이렇게 대들어, 내가 무슨 네 친구야?”라며 호통 치고 그만이다.

 이러면 내 얼굴에는 불만이 가득하다. 짐짓 그럴까, 하는 시늉이라도 해줄 수 있는 것인데 아부진 한 치 양보하는 법이 없다. 조선 사람에겐 농사일이 제일이라는 주장도 퍽 우습다. 당최 밭갈이란 놈은 언제 끝나고 수확이란 놈은 또 언제 끝난단 말인지, 허구한 날 씨앗만 뿌리고 그걸 걷질 못하니 죄다 문둥이처럼 꼴사납게 변하지 않고 배기겠나.

 나는 또 이 강원도 산기슭을 떠나지 못한다. 일전에 시내서 살 때 말이다. 보도연맹이란 것에 가입할까 하는 생각해도 해보았다만, 철드니 그것도 부질없는 짓임을 깨달았다.

 “서울 가길 위해서 뭘 못하겠어요. 내가 아이스케키를 팔아서라도 가겠지요.”

 그런데 또 그러진 못하니 웃긴 노릇이다. 혼자 상경 하려고 해도 효(孝)란 것이 뭔지 날 괴롭힌다. 본디 굶주리고 화냥년 자식이라 핍박받아도 부모를 향한 마음은 애틋한 법이다.

 오늘도 말로만 서울 간다, 하고 나와 버렸다. 비틀거리다 논두렁에 앉으니 연방 원망만 했던 아부지가 조금은 가엾다. 그러나 앙심이 쉽게 풀리겠는가. 나 혼자 토라져서 씩씩거린다. 논두렁까지 가서 우당탕 물장구를 치며 화를 풀었다. 그러다 젖은 바짓가랑일 걷고 멀뚱멀뚱 집 쪽만 쳐다본다. 창호 틈에서 새는 불빛이 여리다.

 “아부진 어무이가 북쪽 간 게 원통도 않소? 내 차라리 어무일 쫓아갈 걸 그랬소!”

 하고 어머니가 주신 다마(玉)를 본다. 허리춤에 매달린 다마가 소리 내어 운다. 구슬프다.

 

 언제가는 답답해서 아부지 담배 한 갑을 훔쳐 폈다. 답답함만이 이유는 아니었고 호기심도 약간 있었다. 흡연하는 광경을 보신 아부지가 싸리나무로 타작하며 하시는 말이,

 “불효도 이런 불효가 있나, 죽고 잡니!”

 괜스레 서러워진 나는 또 글썽거리며,

 “죽일라면 죽이라지우! 내가 왜 촌구석에서 이렇게 썩어나가야 하지요? 에잇, 공산당인지 뭔지 하는 놈들이 아무리 빌어먹을 것들이어도 잘 구슬려 평양이나 갈 걸 그랬네!”

 하고 나가버렸다. 아, 거 날씨는 좋은데 눈물이 앞을 가린다. 정처 없이 떠돌다 논두렁길을 거닐었다. 모내기가 채 끝나지 않은 벌판이 펼쳐져 있었다. 난 거길 지그시 감상했다.

 그러다가 나는 또 언제나처럼 논둑에 달려가 나앉았다. 밤낮으로 술만 잡숴대고 ‘화냥년’을 기다리랴 촌구석에 발목 잡힌 아부지의 미련함이 마냥 원망스럽다. 이럴 적이면 정말로 내 어무이처럼 북이란 곳엘 갈까 한다. 공산인지 공터인지, 민주인지 맥주인지는 백날 들어도 모르겠다만 어디든지 행복할 수만 있다면 지옥서도 어디 못 살쏘냐. 모름지기 사내란 것은 어서 살든 제 터를 잡고 가정을 꾸리기 마련이다.

 “어무이가 평양에 계신다 했나.”

 이러니 이맘때는 어머니가 내려와서 어여 가자, 하면 따라갈 것만 같았다. 공산주의라고 하는 것들에는 영 까막눈이었고 사랑이 간절했던 탓이다. 그런데 난데없이 저 개울가에서,

 “동네사람들, 나 죽어요, 죽어!”

 이에 놀란 내가 퍼떡 일어나서 보니 뉘가 개울가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게 보이지 않는가. 첨벙첨벙 물장구도 치고 들락 말락 자맥질도 하는 것을 흘겨 봐 첨엔 멱을 감는 줄 알았다. 고년의 물에 잠긴 생머리가 흡사 미역을 풀어놓은 것만 같다. 그런데 망아지처럼 생긴 고년이 아르렁거리며 물을 토해내질 않나. 이게 난 또 장난으로만 여겨 히죽거렸건만 정말로 그 사람이 물을 먹고 만다. 그래서 뛰어들어,

 “어디에 있소, 어디에!”

 “여기 안 뵈니? 눈 좀 뜨라!”

 그러나 암만 찾아도 없다. 일단 물러나련다. 그리고 숨이 가팔라 육지 위로 가려는데 무언가 흐느적거리는 것이 내 몸을 부여잡고 뒤흔든다. 문어라도 되는 성싶다. 물속이라 행동이 자유롭지 못하다. 이대로 죽는가 싶어 내 명줄 끊는 것이나 뵈자니깐, 아, 아까 그년이다.

 ‘이게 무슨 일이람! 분명히 물에 빠진 년인데 어째 날 붙잡고 있나!’

 발버둥 쳐도 나를 부여잡은 년은 실없이 웃는다.

 해서 뒷생각은 않고 입을 벌려서 그년의 어깨를 덥석 물었다. 그러자 지도 아팠는지 저기 멀리 튕겨나가 낑낑거리질 않나. 나는 이 틈을 이용해 수면 위로 얼른 나가버렸다. 갑자기 공기를 만나 코가 얼얼했다. 펄떡펄떡 요동치는 허파를 안고 지면을 찾아 헤맸다.

 그런데 불쑥 튀어나온 그년이

 “인제 나한테 속았다, 인제 나한테 속았어. 남조선 것도 별 게 아니래.”

 라며 나를 놀리는 게 아닌가. 물속에서 오래 버티는 그년이 무슨 초인(超人)인가 싶어서 자세히 보니 산기슭에서 사는 명숙이다. 홀어미를 모시며 머리에 꽃을 꽂고 쏘다니는 년이 바로 저년이다. 껄떡거리는 심장을 손바닥으로 쓸어내린 나는 그녈 찬찬히 살폈다.

 허, 그년 참 어여쁘게 생기었다만 홍치마가 걸린다. 왜 그러잖나, 홍색은 북의 상징이라고. 아무튼 오뚝한 콧날하며 백지장처럼 마냥 허옇기만 한 상판, 게다 좁디좁은 어깨지만 품은 기상이 얼마나 뛰어난지 난 으레 몸을 움츠리고 만다. 그래도 할 말은 해야 할 성싶어,

 “그러다가 사람 잡수다. 알간?”

 “잡수긴 개나 잡숴. 사람을 어찌 먹니?”

 “허, 이 계집. 여자라고 해서 말을 봐주니 말이지. 잡는단 말이오.”

 낯 빨개지고 부끄러워 혼자 육지로 가려는데 또 발이 묶인다. 저 계집은 내가 화내도 그저 재미있는 양 자꾸만 이런다. 앙증맞은 구석이 있는 가하면 당돌하기까지 하다.

 “에이, 삐지었나? 삐진 모양이구나? 내 동무도 없는데 함 친해지지 않으련?”

 하고 계집은 한 치의 부끄러움 없이 말하질 않는가.

 “나는 그럴 여유가 되질 못한다. 다른 급우나 알아 뵈라.”

 라며 나는 명숙이의 손길을 뿌리쳤다. 그러자 명숙인 혼자 퍽 진지해져서,

 “이 남정네가 속고만 살았나, 내가 닐 잡아먹겠다는 것도 아닌데 웬 튕김이야!”

 라며 물을 한 움큼 모아 내 얼굴에 뿌린다. 나는 그걸 또 헐떡거리며 피하려다 물속으로 푸욱 잠긴다. 팔 휘두르며 떠오르니 명숙이는 그저 웃는다.

 명숙이는 혼자서 징검다리에 기어오르더니 저 만치 가다 말고,

 “증말 안 올랑가?”

 하고 여운을 낸다.

 “그럼 따라오란 말인가.”

 라고 하면서도 나는 명숙이를 따라갔다. 그래 따라간 나는 퍽 가까운 명숙의 거처를 향했는데, 가는 내내 조총련(朝總聯)이니 보도연맹이니 하는 민감한 얘길 꺼내지 않나. 내 굳이 듣지 않겠다고 그만하라고 해도 그년 말하는 게 참 신나다. 그러다 화를 내니 우린 참 서먹해졌는데 마침 명숙의 거처가 보였다. 아 근데 저게 수상한 점이 한 둘이 아니다.

 시멘트 건물에다 판자로 통풍을 막고 그 위에 넝쿨을 친 것을 가지고 집이라 하질 않나. 게다가 천장은 무슨 폭격이라도 맞은 듯 뻥 뚫려있고. 개라도 몇 마리 주워 다 키우는 모양인데 죄다 빌빌거리고 따분한 표정을 짓는다. 짖기는커녕 물끄러미 보기만 한다.

 “개들이 왜 저리 비실거리나?”

 “알 거 없다. 알면 묵기라도 하려나.”

 “개고기는 뭔 맛으로 먹누……”

 아직도 뾰로통해졌는지 내가 살살 달래니 그제야 화 푼다. 헌데 개들 참 이상하다. 코를 땅 속에다 묻기도 하고 낡아 헤진 개집에 들어가서 가래 끓는 소리를 내기도 한다.

 관심 끄고 들어가는데, 현관이 밖보다 더하다. 신발이 너저분히 널려 있고 때 지난 나막신이 저 멀리까지 떨어져 있다. 자갈과 물컹물컹한 검은 물체도 있고 벽에는 무슨 장성(將星)이라도 되는 양반들의 초상화가 즐비해있다. 거실까지 뻗혀진 복도는 대체로 말끔한 편이나 이것도 그리 성하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양쪽 벽에는 뉘가 똥칠이라도 한 모양이었다.

 명숙이는 걸음을 멈추고,

 “누추하지만 발 디딜 틈은 있다. 저 계신 게 울 어무니다.”

 괘꽝스러운 노인네가 거실 정중앙에 앉아 있다. 그것도 손에 오물과 토사물로 생각되는 물체를 쥔 채로. 움켜쥐다 입에 넣으려고도 한다. 그러다가 명숙이의 기척을 느껴 고개를 들고 헤벌쭉 웃는다. 명숙인 손을 흔든다. 백발의 노인네는 다시 웅크린다. 부러진 치아에도 역시 오물이 흘러내린다. 젖가슴이 축 처지고 그 위를 덮은 속옷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꽤 누렇다. 손목과 다리는 하도 얇아서 부러질 것만 같다. 골반 언저리에도 오물은 서성인다.

 추깃물과도 같은 토사물은 망령(亡靈)이었다.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지옥과의 통신이었고 원치 않은 딸 명숙에 대한 자책이었다. 노인네의 눈이 서글프다. 이 나를 보는가, 저 명숙이를 보는가. 노인네의 눈은 허하다. 공허해서 그 안에 담긴 슬픔과 원망이 누구도 보지 않은 것만 같다. 그러면서 노인네는 구토를 한다. 토사물이 옆으로 번진다. 선혈인가 싶더니만 그대로 토사물이 그 위를 덮는다. 냄새가 퍼진다.

 “…나 아부지가 농작 시킨 걸 이제야 생각났다. 가봐야겠네. 미안해.”

 하고 나는 그 집을 얼른 나와 버렸다. 속이 울렁거려 견딜 수가 없다. 달음박질하다 징검다리에서 넘어졌다. 짭조름한 코피가 입술에 고였고, 엎어진 바람에 홀딱 젖었다.

 시냇가 정자에 있는 아부지를 붙들었다. 곰방대에 담뱃잎을 쑤셔 넣고 피우시고 계셨다.

 “바쁜데 왜 이리 서성거려! 몸은 또 왜 그리 젖었는가!”

 라고 구박을 하시나 나는 아까의 과오를 사죄하고자,

 “아깐 죄송해요.”

 하고는 다시,

 “저쪽 산기슭 개울가 쪽에 집 한 채 있던데 그게 뭐지요?”

 또 어름어름 뜸을 들이다가 이번에는 아시겠는지 화를 푸시고는,

 “일제강점기 지방관서 말이냐. 그걸 네가 왜 묻니. 일전에는 총독부의 관서였다가 육이오사변 때는 빨갱이 그 괴뢰의 앞잡이들 본거지였다지. 휴전 직후 때는 가관이었다. 그 폭삭 무너진 걸 뉘가 고쳐서 산다고 했는데, 임마, 그런 한 맺힌 곳엔 가는 게 아니다.”

 고럼 벽에 걸린 초상화가 지방관서에 임명된 일본인이란 말인가. 꾸벅 절하고 물러나려는데 아부지가 혼잣말로 중얼거리신다. 담뱃잎을 새로 쑤셔 넣고 뻐끔뻐끔 담배를 태우시는데 그 연기가 제법 장중해서 하시는 말씀 하나하나가 새롭다.

 “즈그 어미는 핏줄을 이남(以南)에 두지 아니하겠다며 싹둑 자르려 하는데 어찌 저렇게 철없이 굴꼬. 그년이 이북에서 낳은 처자식이 몇이나 있을는지 가늠도 못하겠네.”

 하는 말이 왠지 비통함이 섞여 있다. 당최 뭔 내용인지 짐작조차 어려웠지만 사변을 겪은 인텔리요, 읍(邑)에서의 천한 농민인 아버지는, 앞에서의 그 푸념이 유달리 짙었다.

 

 아, 여름하늘 참 맑고 공허하다. 오늘따라 그 학구열이란 놈을 태우기는커녕 그저 청춘을 즐기며 놀고프다. 저 개울가가 번쩍거리는가, 참새 내쫓는 허수아비가 덩실거리는가. 저기 민들레꽃은 그 많던 잎을 어따 버렸던지 휑뎅그렁하게 꽃대만 남아있질 않나. 저 외로움을 달랠 연민이 들기도 전에 하얀 씨앗이 바람을 타고 넘실거린다. 아, 참 좋은 날이라.

 ‘구운몽(九雲夢)의 저기 뉘시더냐. 그래, 그 양소유(楊少游)라는 양반보단 못해도 세상으로 쏘다니고 싶구나. 처량하다 처량해. 교육이 뭐던가. 무엇인데 날 이리 붙잡노.’

 그래서 팔선녀(八仙女)따윌 상상하며 앉아있는데 수업내용 참 묘하다. 상관없는 명숙이의 이름을 꺼내질 않나, 그년이 일제와 이북에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 집안이라 하질 않나. 나는 바로 이 ‘매국노’란 말에 꽤 화나 교탁까지 튀어나왔다. 매국노라니. 아무리 그래도 그 원치 않은 관계더러 매국노라니. 나는 혈맥이 붉게 튀어나올 정도로 분노하며,

 “잘들 해보소! 세상에 국가를 위해 몸을 바친 사람더러 매국노라 말하니 교육자라 말하는 것마저 당신에겐 사치가 아니겠소? 당최 어떤 개소린지 몰라도 당신, 술주정이요, 그거.”

 하고 교정을 쓸쓸히 걸어 나왔다. 그래 쏘다니다 담배도 한 모금 쭉 펴주고 아부지 술상을 핑계로 막걸리 하날 구해다 마시니 어, 취한다. 술지게미란 것을 손에 쥐락펴락 움켜 잡숴 꾸역꾸역 넘기니 그만한 음식도 없다마. 거기에 막걸리를 냅다 부우면 속이 그렁그렁하나 좀 지나면 그런대로 견딜 만하다. 아, 이리 잡숴대니 살 것 같다. 뜰에 몸을 누였다.

 “…정말이지 사상이고 뭐고 다 필요 없다. 그저 그년 불쌍타.”

 그래 울다가 잠이라도 들은 모양이다. 딴에는 두둑한 배를 조금은 쉬게 해주자 눈을 감은 것인데 이게 그만 새벽녘에서야 뜨이고 말았다. 어둡다. 눅눅한 습기가 몸에 덕지덕지 붙는 기분도 들고 벌레도 몸에 서성이는 것 같다. 엄마야, 하고 논두렁길에 올라서는데 명숙이 그 야무진 년이 가운데를 떡하니 버티고 서있질 않나. 난 놀라면서도 그 맘 감추려고,

 “뭣이 또 일이 있다고 왔나.”

 하고 까칠하게 물어본다.

 명숙이가 뒷머릴 긁적이다가,

 “울 어무이가 닐 찾아.”

 “나를 왜. 느그 어무이가 왜 날 찾나.”

 “그날 본 것이 마음에 들은 모양이다.”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

 “오물이나 찍찍 싸면서 그 명줄 유지하기 어디 쉬운가, 나처럼 젊은 사내도 봐야지.”

 실토하건대, 참말로 명숙이의 어머닐 욕하거나 되알지게 닦달할 의도가 아니다. 그러니깐 명숙이의 어머니가 명이 더럽게 기니 뭐라니 라고 말할 의도가 아니란 소리다. 다행히 명숙도 이를 거리낌을 느끼지 않는 기색이다. 안도와 함께 명숙이네 집을 향했다.

 “아주머니, 잘 지내셨소?”

 검버섯 낀 얼굴이 오물을 흘리며 히죽거린다. 배냇병신처럼 서있던 내가,

 “좀만 기다리쇼. 내 아주머니 끼니는 해결해드려야지.”

 하는 호언장담은 했으나 부엌을 가자니 토사물 땜에 꺼려지는 처지다. 그러다 둑에서 내 다마와 비슷한 걸 흘겨봤는데 확인할 겨를이 없다. 숨 참고 얼굴 빨개져 휑뎅그렁한 부엌을 누벼도, 내가 잡은 것이 가마솥인지 솥뚜껑인지, 아님 자란지 거북인지 분간조차 되질 않기에다. 빌어먹을! 하고 나온 것도 그 때문인데 요상케도 그 다마 비슷한 게 자꾸 떠오른다.

 “미안해서 어쩌지, 아주머니. 담을 기약합시다. 헌데 안에 다마는 뭐지.”

 그래도 뭐가 좋은지 저리 웃는다. 마음 한 구석 내키나 그 웃음보니 나도 좀 편하다. 이때 주윌 살피니 명숙이가 없다. 허, 녀석 손님을 모시고 뭐하는 거람. 대접은 아니더라도 사람을 이리 방치하고 있어도 된단 말인가. 해서 내가 명숙이를 찾아 쏘다니니 층계를 지나 마주치는 방에 노랫소리가 들리더라. 콧노래인가 휘파람인가, 알 수 없는 가성이다.

 “이년아!”

 하고 문을 여니, 아 저게 뭐란 말이던가. 벽면을 가득히 채운 인공기와 붉은 선혈을 갖다 쓴 일제를 향한 속어들……, 거기에 또 공산적기를 무슨 신줏단지처럼 귀하게 걸어놓았는데 이게 참 무섭더라. 명숙이가 그 사이에 떡하니 앉아서 엄중히 이북을 부르질 않나. 해서 내 울컥한 기분 접고 다가가니 명숙이는 감고 있던 눈을 뜬다. 나는 또 괜스레 울적해서,

 “당최 너란 계집은 얼마까지 당돌할지 내 감히 짐작을 못하겠다.”

 설움이 조금은 가셨는지 살짝 미솔 지으며,

 “내가 널 부른 건 딴 일이 있어서도 아니다. 어머닐 핑계로 데려온 건 참말로 미안하다. 울 어무이, 불쌍한 울 어무이 어찌할꼬. 내가 죽으면 울 어무인 어찌할꼬.”

 “당최 니 말하는 거 하나도 모르겠다. 좀 알아듣게 설명 해줄 순 없겠니?”

 명숙이는 좌우를 괜히 살피고는,

 “이북으로 가는 거다.”

 라고 속삭인다. 그런데 그 이북(以北)이란 것이 뉘가 사용하는 이름인지, 국명인지 참 애매하다. 학교서 배운 것이라곤 정체불명의 무장단체가 군사분계선 이북을 차지했다는 것뿐이거니와 그 외에 더 알고 싶어도 알면 다치는 것이 이 시대여서 내 지식은 짧기만 했다.

 명숙이는 침을 꼴깍 삼켜내고 다시 말을 잇는데 거 참 소름 끼친다.

 “어무닐 저리 만든 일제 놈들 말이다. 이북에 가면 전차가 수십 대가 있어 그 일제를 무참히 짓밟을 수 있단다. 그리하면 어무니 원통한 속 풀고 나도 일제에 대한 설욕 풀고, 이게 얼마나 좋다니? 생각을 해보렴. 고급주택에 생필품과 무료교육까지 준다잖니? 게다 조금만 남한 정보 캐내면 185억 원이 꿀떡 내 품에 들어온다잖니. 같이 가자, 동지.”

 라며 삐라인지 뭔지 적색 전단지를 내게 쥐어주질 않나. 허 그제야 나는 사태가 파악됐다. 웃어른께서 가라사대, 삐라라는 것은 욕망의 상자니 함부로 뵈거나 건들질 말라 하시거늘 내 이것을 만졌으니 참말로 죽는 게 아닌 가싶다. 그래서 꽁무니 빼며 문간께 숨으니 요년, 끈질기게 쫓아와 삐라를 자꾸 내 눈알에 비비질 않나. 그러면서 하는 말 참 가관이다.

 “이게 안 뵈니, 이게 안 뵈? 수령님이 여기 계시는데 이게 안 뵈?”

 이년아 작작 좀 하라며 떨치니, 허, 추풍낙엽(秋風落葉) 따로 없다. 그대로 나가떨어져 저 방바닥에 머릴 꼬라박질 않던가. 이 소릴 또 어찌 들었는지 그년 어미가 달려왔다. 그러며 눈에 핏발까지 세운다. 그게 제 자식 내동댕이쳤다는 구실에서 우러나온 볼멘소린데,

 “이 빌어먹을 놈아! 네가 일본 순사로구나! 허허, 이젠 하다못해 내 자식까지 이리하니? 내 비록 짐승 같은 너희들에게 이런 꼴이 되었을망정 내 안에 품은 애국심, 그 고귀함은 결코 변하질 않는다. 뭐가 그리 불만이뇨? 내게 뭐가 그리 불만이기에 내 자식까지 학대하니?”

 내가 참 기가 막혀서(아니 근데 저 양반이 말을 할 줄 알았던가!),

 “아주머니, 나는 순사는 아니다. 내 그 씹어 먹을 놈이겠는가?”

 하며 변명해도, 망령 깃든 노인네는 도무지 노기를 걷을 기미 없이,

 “이게 모두 내 탓이다, 이 망할 년아. 아이고, 아이고. 내 어찌 할꼬. 내 어찌 해!”

 라며 엉엉 운다. 머리에 주먹만 한 혹을 매단 명숙이도 덩달아 운다. 나는 그걸 보다 말고 불현듯 어떤 기지를 발휘했다. 그게 뭔고 하니, 요놈들이 사회주의니 공산주의니 하는 걸로다가 조국을 자극하고 있질 않나? 그래서 이걸 관청에 신고하면 포상도 두둑이 얻고, 어디 그뿐이랴! 저년에게 잘못 박힌 사상을 내 친히 붕괴하고픈 마음이 간절하니 이것까지 해소할 수 있으니 얼마나 속 시원한가. 세뇐지 뭔지에 호되게 당한 그년, 참 안쓰럽다.

 “남조선이 무얼 해줄 수 있느뇨? 북조선서는 천리마운동이다 뭐다 하여 탁월한 효과를 내 인민을 구제하고 있거늘 남조선 뭣하니! 내 안 그래도 늬 같은 남조선 추종자에게 한 마디 하고팠다. 대체 유엔인지 애인지 하는 단체는 허구한 날 삐라에다 홍보를 하면서도 그것들  죄다 무시하고 다닌다니? 긍께 내 말은 남조선 발전에 외세가 기여하나, 이 말이다!”

 이러니 나는 또 말문이 막힌다. 명숙이는 또 신이 나서,

 “오늘 인민군 동무들이 오기루 했으니 함 고려해봐라! 단 허튼 수작 부리면 느그 일가는 참살시켜버리라 내 친히 부탁해둘 게다. 인민군 말에 따르면 대남 삐라를 소지하고 무장을 해제했음을 알리면 그걸로 월북이 성공된 거라고 한다.”

 하면서도 여운이 남았는지,

 “나는 네가 이성 있는 선택을 하길 바란다. 어무이, 이제 가요.”

 한다. 그 목소리가 명랑하면서도 얼마나 울적한지, 목이 컥 메는 것만 같았다.

 부녀가 떠나려할 즈음에 나는 얼른 명숙이에게 매달렸다. 거 사랑이란 놈은 뭐고 애틋한 감정이란 놈은 또 무엇이던지 이팔청춘 갓 지난 청년이 비참한 짓을 하게끔 만든다.

 “떠나지 마라, 떠나질 말아! 느이 딱한 처지는 내 알겠지만 그래도 거길 가면 죽고 만다. 제발 떠나질 말아! 네가 이리 가버리면 난 어쩌며 살리? 그래, 네와 내가 서로 눈 마주친 것은 채 한 달도 되질 않다만 그래도 이 감정, 이 사랑은 어쩌란 말이니!”

 그러자 명숙인 요염하게 엉덩이를 비틀며 목소릴 얇게 낸다.

 “그러기에 뉘가 첨부터 잘하지 말라고 했니? 흥, 꼴좋다, 얘. 당최 나는 네가 가진 그 미련함이 의심스럽구나. 그저 따라만 오면 될 것을 굳이 이러고 나앉아있니? 이래서 어찌 너를 믿고 내가 혼약을 맺겠니? 한심한 남정네는 바로 너 같은 남정네다, 이눔아!”

 라고 하는데, 이럴 만치 되니깐 내 눈이 부리부리해지고 느슨했던 신체에 힘도 퍽 들어가 달아오르는 것이 심상치가 않더라. 나는 그래도 화를 억누르려고,

 “그럼 개울가에서의 일도 다 이 일을 위해서란 말인감!”

 하니, 그것도 나름 일침이었던 모양이다. 명숙이가 설레발을 치며 당황하질 않나. 해서 난,

 “귀가 있으면 내말 들었을 테고 입이 있으면 대답을 했을 텐데, 왜 말이 없니! 엉?”

 명숙인 또 다시 짐을 싸는데 분주하다. 내가 어깰 붙잡고 뒤흔드니 명숙이가 내 따귀를 그 고사리 같은 손으로 치질 않나. 아, 내 볼이 달아오르는데 귓불은 뺨보다 더 벌겋다.

 “그래, 이놈아. 이 머저리 같은 남정네야. 이제 속이 다 시원하냐? 너 월북(越北)시키려고 내가 이런 거니깐, 사랑? 얘 우습다. 그런 허튼 생각 말고 썩 꺼져나!”

 그러니 풀죽은 나는,

 “…되었다, 되었어. 나는 이상 미련 없다.”

 하고 나는 그 길로 명숙이를 떠났다. 가는 내내 궂은비가 모질게 내 상판을 때렸다. 한참 저만치까지 가다 서서 뒤를 홱 돌아보는데, 잔잔한 여운이 지겹게 남는다.

 

 밭에다 두엄을 져 나르고 수레를 두렁에다 세워놓았다. 아, 땀 참 뻘뻘 흐른다. 그러다가 적색 홍보문구를 거창하게 적은 삐라를 발견했는데 그 위에 카악 퉤하고 침을 뱉었다. 저래 못되게 생겨먹은 흉물이 남에 사랑 다 망쳤네, 하고 욕도 해본다.

 ‘…내가 이런 거니깐, 사랑? 얘 우습다. 그런 허튼 생각 말고 썩 꺼져나!’

 하는 어제 명숙의 말이 자꾸 귓전을 맴돈다. 이놈의 계집애, 이놈의 계집애. 남에 맘에 불 지르고 꽁무니 빼면 그것도 나름 방화죄가 아니더냐. 나는 웅크리고 앉아 막걸리를 한 병 비워버렸다. 그년 허연 것 심해 창백하게까지 뵐 얼굴, 자꾸 선명히 떠올라서 괴롭다.

 암팡스런 계집애. 나는 취해서 부리부리해진 눈알을 이리저리 굴러대며 주정을 부린다. 아, 슬프다. 그래 슬퍼서 노래 한 곡절도 구수하게 불러보고 쇠여물도 쑥덕쑥덕 잘라 밥 마냥 입 속에 넣어보니, 이게 무슨 짓이람. 입에 거친 지푸라기가 찔려 쓰라리다.

 “니미! 나는 소만도 못한 사람이란 말이요?”

 하고 풀썩 볏섬 위에 쓰러지는데, 저게 뉘신가. 뉘가 보인다. 양갓집 규수 같기도 하면서 숫총각만 골라 애간장 태우는 처녀귀신 같기도 하다. 허 입술 참 붉다. 쥐라도 잡아 잡수셨나 어찌 저리 붉을 수 있나. 또 피부는 뭐 저리 뽀얀가. 쌀뜨물과 눈 저리 가라할 정도로 뽀얗고 곱다. 그리고 저 눈…… 저 눈……. 저 앙칼지고 큰 뜻 품은 저 눈은 뭐신가.

 “…명숙이는 아닐 테지!”

 라고 외쳤는데 어째 대답이 없다. 답답한 나는 주정을 멈추고,

 “헛것이고 자시고, 귀신이고 여인이고 명숙이는 아니겠지! 분명 평양 간다고 떠났으니깐!”

 라고 다시 말한다. 그러자 그녀는 도톰하게 드러난 백옥 같은 가슴살 속에서 비수 한 자룰 쥐어다가 내 가슴에 팍 꽂는다. 아. 가벼운 신음과 함께 풀썩 쓰러진 나는 고대로 웃는다. 내 위에 함께 쓰러진 명숙은 그래도 할 말 하겠노라며,

 “…어무니가 죽었다, 어무니가 죽었어. 남조선인과 내통했다는 구실로 사형을 했댄다…, 내 어무닐 먼저 월북시키는 게 아니었는데…, 이일을 어쩌면 좋니, 어쩌면 좋아. 더 이상 살아갈 이유도 명분도 없다. 그저 죽는 것이 내 소망이다.”

 라며 울음 섞인 말을 쏟는데 어째 내 가슴의 통증이 통증 아닌 것만 같다. 광 속 흐드러진 볏섬에서 우린 얼마나 울었나. 내가 피를 왈칵 토해내며 사망했을 때까진가, 명숙이 광께 에서 돈다발 건네는 울 어무니와 야릇한 눈길을 교환할 때인가. 아, 어무니! 하는 통곡도 내 입술에선 무슨 혼백처럼 서성인다. 아부지가 했던 말이 떠오르는 건 웬말인가.

 ‘즈그 어미는 핏줄을 이남(以南)에 두지 아니하겠다며 싹둑 자르려 하는데 어찌 저렇게 철없이 굴꼬. 그년이 이북에서 낳은 처자식이 몇이나 있을는지 가늠도 못하겠네.